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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학

요한복음의 ‘사랑’ 개념에 담긴 헬라어 신학적 의미

by star-road 2025. 10. 29.

서론 

요한복음은 신약성경 전체 중에서도 ‘사랑’이라는 개념을 가장 깊이 탐구하는 복음서로 알려져 있다. 요한은 단순한 감정적 교류나 윤리적 명령으로서의 사랑을 넘어,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가 사랑임’을 드러내는 신학적 언어로 사랑을 재해석한다. 본 글에서는 요한복음에 사용된 헬라어 ‘아가페(ἀγάπη)’와 ‘필레오(φιλέω)’의 신학적 의미를 분석하며, 요한이 그 언어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계시적 사랑’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요한복음이 말하는 사랑이 단순한 덕목이 아닌, 구속과 영생을 연결하는 신적 실체임을 밝히고자 한다.

 

1. 요한복음이 말하는 ‘사랑’의 독특한 위치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와 구별되는 독특한 신학적 구조를 가진다. 공관복음이 예수의 행적과 비유 중심이라면, 요한복음은 예수의 존재론적 정체성에 초점을 둔다. 요한은 예수를 단순한 예언자나 도덕 교사로 묘사하지 않고,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로고스(λόγος)’, 즉 말씀 자체로 제시한다.

 

요한복음의 ‘사랑’ 개념에 담긴 헬라어 신학적 의미

 

 

이 서술 안에서 ‘사랑’은 행동의 윤리적 기준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 속성으로 드러난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고 믿는 자들을 연결하는 끈은 교리나 의식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이다. 요한은 “하나님이 곧 사랑이시다(ὁ θεὸς ἀγάπη ἐστίν, 요일 4:8)”라는 선언을 통해 사랑을 신학의 정점으로 올려놓는다. 그에게 사랑은 신의 속성일 뿐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이기도 하다.

 

2. 헬라어 ‘아가페(ἀγάπη)’의 신학적 의미

헬라어에는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가 여러 가지 존재한다. ‘에로스(ἔρως)’는 욕망적 사랑, ‘스토르게(στοργή)’는 가족애, ‘필레오(φιλέω)’는 우정과 애정을 뜻한다. 그러나 요한은 그중에서도 **‘아가페(ἀγάπη)’**라는 단어를 선택하여, 의지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강조한다.

 

‘아가페’는 감정의 불씨가 아니라, 의지의 결단과 헌신으로 완성되는 사랑이다.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은 이 ‘아가페’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신다. 즉, 사랑은 하나님이 세상을 구속하는 동기이며 동시에 수단이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바로 그 아가페의 절정이다. 예수는 단순히 고난을 견디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의 주체로 나타난다. 요한복음 15장 13절은 이를 분명히 한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여기서 사용된 동사 **‘ἀγαπᾷ’(아가파)**는 단순한 감정이 아닌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헌신 행위를 가리킨다. 요한은 사랑을 말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는 예수의 행위 속에서, 특히 십자가 위의 자기 포기 속에서 ‘아가페’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요한복음의 아가페는 따라서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시작한 구속적 사랑이다. 이 사랑이 없다면 인간의 구원도, 공동체의 형성도 불가능하다.

 

3. ‘필레오(φιλέω)’와 ‘아가페(ἀγάπη)’의 미묘한 차이

요한복음 21장에서 예수와 베드로의 대화는 헬라어 사랑 어휘의 신학적 깊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이다. 부활 후 예수는 베드로에게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1·2차 질문에는 ‘ἀγαπᾷς με’(아가파이스 메), 3차 질문에는 ‘φιλεῖς με’(필리스 메)가 사용된다.

 

‘아가페’는 신적 사랑을, ‘필레오’는 인간적 애정과 우정을 나타낸다. 예수는 처음 두 번은 ‘아가페’를 사용하여 베드로에게 절대적 헌신의 사랑을 요구한다. 그러나 세 번째에는 ‘필레오’를 사용하며, 인간의 한계와 진정성을 인정하신다.

 

이 변화는 단순한 어휘적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불완전한 사랑을 포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요한은 이 대화를 통해 완전한 사랑(아가페)과 불완전한 사랑(필레오)이 대립이 아니라, 성숙의 단계임을 드러낸다. 인간은 필레오에서 시작해 아가페로 초대받는다. 이 신학적 통찰은 요한복음의 은혜의 핵심이다.

 

4. 요한복음 속 사랑의 신학적 구조

요한복음에서 사랑은 단순한 윤리 개념이 아니라, 구원론적 구조의 중심축이다. 사랑은 창조에서 시작하여 구속과 영생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드라마 안에서 기능한다.

 

① 창조적 사랑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 1:1)”
하나님은 사랑의 의지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사랑은 존재의 근원이며, 창조의 동력이다.

 

② 구속적 사랑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구속은 사랑의 절정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심판으로 해결하지 않고, 사랑으로 회복시키신다.

 

③ 영생의 사랑 – “내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
사랑은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적 상태이다. 사랑 안에 머무는 자는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

 

요한은 구원의 완성이 믿음의 시작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본다. 진정한 믿음은 사랑으로 표현될 때 완성된다. 사랑은 신앙의 증거이자, 구원의 지속적 표현이다.

 

5. 사랑의 헬라어적 뿌리와 요한의 신학적 재해석

요한은 헬라 철학의 언어를 빌려 사용했지만, 그 의미를 급진적으로 뒤집었다. 고대 철학에서 ‘에로스’는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선을 향해 나아가는 욕망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그 방향을 바꾼다. 사랑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는 운동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오신 사건이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의 사랑(Incarnational Love)’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인간의 고통과 현실 속으로 들어오셨다. 그분의 사랑은 거리 두기가 아닌 임재의 행위다.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성육신은 단순히 교리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공간과 시간을 뚫고 나타난 현존이다. 따라서 요한에게 사랑은 신비이자 현실, 계시이자 역사다.

 

6. 현대 신앙과 윤리 속에서 본 요한의 사랑

오늘날의 신학자들은 요한복음의 사랑을 단지 종교적 감정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요한이 말한 사랑을 인간이 신적 존재로 성숙해 가는 여정으로 본다.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통해 공동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재현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요한 적 사랑은 단순한 감정의 나눔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의 관계적 자유다. 그것은 인간을 종속시키는 명령이 아니라, 해방으로 이끄는 복음의 힘이다. 사랑은 상대를 지배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게 만든다.

 

현대 교회는 이러한 사랑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예배 속에서, 사회봉사 속에서, 그리고 온라인 공간 속에서도 요한의 아가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7. 결론 – 요한복음의 ‘사랑’은 신학의 완성이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이다. ‘아가페’는 하나님만이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절대적 사랑이며, ‘필레오’는 인간이 그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요한은 이 둘을 대립시키지 않고 성숙의 여정으로 묘사한다.

 

결국 요한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다(요일 4:19)”는 선언이다. 이 진리는 오늘의 교회와 신앙 공동체에 여전히 살아 있는 메시지다. 하나님의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간의 영혼 속으로 스며든다.

 

요한복음의 사랑은 단순한 신학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며, 신앙의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