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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학

성경에서 나타난 시간 개념과 영원성의 철학

by star-road 2025. 10. 27.

서론: 시간의 신학, 인간의 시계를 넘어서는 이야기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시간이라는 이름의 강물 위를 건너기 시작한다. 누구나 그 강물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그 흐름을 멈출 수는 없다. 매일 우리는 시계를 보며 하루를 정리하고, 또다시 새로운 시간을 계획한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시간이란 단순히 흘러가는 숫자의 흐름이 아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사건의 공간이며, 그분의 뜻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나는 이 주제를 생각할 때마다 인간의 시계와 하나님의 시계가 얼마나 다른가를 느낀다. 인간은 초침의 움직임을 따라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의미의 순간 속에서 일하신다. 현대 사회는 시간을 효율의 단위로 재단한다. 빠름은 미덕이 되고, 느림은 결함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성경의 시간은 다르다. 성경의 시간은 “효율”이 아니라 “의미”를 묻는다.

 

하나님은 시간의 주인이시며, 그분은 인간의 계산을 넘어선 곳에서 일하신다. 인간의 시간은 흘러가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머무르는 순간’으로 존재한다. 그 안에서 인간은 부르심을 듣고, 존재의 방향을 다시 찾는다. 본 글은 그 신비한 시간의 개념, 그리고 영원이라는 철학적 의미를 탐구하려 한다. 시간의 신학은 단순한 성경 공부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깊은 사유의 길이다.

 

 

성경에서 나타난 시간 개념과 영원성의 철학

 

고대 히브리 문화가 바라본 시간의 의미

히브리 문화에서 시간은 단순히 시계의 흐름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시간은 관계의 사건이었다.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공동체 사이의 약속과 경험이 바로 ‘시간’을 구성했다. 히브리어에서 ‘야다(Yada)’라는 단어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체험한다’는 뜻을 갖는다. 이것이 그들의 시간관을 잘 보여준다.

 

히브리인에게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순환하는 기억이었다. 예를 들어 유월절은 단순히 옛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그들은 매년 유월절을 지날 때마다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해방하신다”라고 고백했다. 과거가 현재로 되살아나는 순간, 시간은 더 이상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건이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시간은 새로 태어난다. 인간은 흘러가는 시간을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은 그 시간을 새롭게 만드신다. 그래서 히브리적 시간은 늘 ‘지금’에 머문다. 과거는 기억으로, 미래는 약속으로, 그리고 현재는 순종의 순간으로 존재한다. 이 관점은 오늘날 신앙인에게도 중요한 통찰을 준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간다고 느끼지만, 하나님 안에서 그 시간은 반복적으로 다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카이로스와 크로노스

그리스 철학과 성경 신학에서는 시간을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눈다.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 즉 시계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Kairos), 곧 하나님의 특별한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우리의 일상,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연속의 시간이다. 하지만 카이로스는 의미의 시간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결정적인 순간이며, 인생의 방향이 바뀌는 시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는 그 대표적인 카이로스였다. 단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세상은 완전히 새로워졌다. 인간의 시계로 보면 짧은 한 시기였지만, 하나님의 시계로는 영원을 가르는 사건이었다. 인간은 크로노스 안에서 하루를 살아가지만, 신앙인은 그 크로노스 안에서 카이로스를 기다리고 discern(분별)한다.

 

나는 종종 내 삶의 시간을 돌아본다. 분주하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도 ‘하나님이 머무르신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계획에 없던 만남, 예기치 못한 깨달음, 또는 눈물로 마주한 기도였다. 그런 순간이 바로 카이로스다. 인간의 시간 속에 하나님의 시간이 스며드는 지점, 그때 인생은 단순한 연속이 아니라 영원의 일부가 된다.

 

영원성의 철학과 끝이 없는 존재의 사유

시간의 본질을 묻는 질문은 철학자들에게도 오래된 과제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시간이란 무엇인가? 내가 묻지 않을 때는 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묻자마자 알 수 없게 된다”라고 고백했다. 그 말은 인간이 시간을 매일 경험하지만, 그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역설을 담고 있다.

 

성경에서 ‘영원’은 단순히 끝이 없는 시간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질적인 상태, 즉 충만함이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 분이지만 동시에 그 시간 속에 임재하신다. 인간은 그분 안에서만 영원을 경험할 수 있다. 신앙 안에서 영원은 도피가 아니라 ‘지금의 깊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할 때, 그 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시계로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지만, 하나님의 시계에서는 여전히 현재로 존재한다. 그래서 신앙의 시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지속되는 현재’다.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영원은 죽음의 부재가 아니라 완전한 충만이다. 하나님 안에서의 영원은 결핍이 없는 완전함이며, 그 완전함이 곧 존재의 안식이다.

 

현대 신앙인이 시간을 살아내는 방식

현대인은 시간을 통제하려고 한다. 계획표를 만들고, 루틴을 세우고, 효율을 높이려 애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을 관리하라고 하시지 않았다. 시간을 ‘거룩히 구별하라’고 하셨다. 이 말은 시간을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예배의 자리로 만들라는 뜻이다.

 

신앙의 시간은 지금이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43)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현재의 선언이었다. 신앙인은 ‘언젠가’ 구원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지금’ 구원을 살아내는 존재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다른 시간의 속도를 허락하신다. 어떤 이는 빠르게, 어떤 이는 천천히 걷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하나님이 주신 방향을 따라 걷는 사람은, 늦더라도 결코 잃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살아내는 것이 곧 영원의 한 조각을 이루는 일이다.

 

나 역시 시간을 쫓아가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루의 끝에서 “오늘 하나님이 내 삶 안에 계셨는가?”를 묻는다면, 그 질문 하나로도 내 하루는 충분히 의미 있다.

 

결론: 시간의 신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시간은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영원을 엿보게 하는 창이다. 우리는 매일 시간에 쫓기며 살지만, 사실 시간 속에 숨어 계신 하나님을 자주 잊는다. 그러나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 90:12) 이 말은 단순히 인생의 짧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 지혜를 배우라는 초대다.

 

신앙인은 시간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다. 우리가 매일의 시간을 예배로 바꿀 때, 그 순간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이 된다. 인간의 시계가 멈추어도, 하나님 안의 시간은 계속 흐른다.

 

결국 시간의 신학은 ‘살아 있는 신앙’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 안에서 시간을 새롭게 경험한다. 매 순간을 영원의 일부로 살아가는 사람, 바로 그런 삶이 성경이 가르치는 ‘시간의 신학’의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