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말하는 용서의 본질
성경이 말하는 용서는 단순히 상대방의 잘못을 눈감아 주거나 과거를 잊어버리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관계를 다시 세우고,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서 새로운 출발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 가치로 제시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마태복음 18:22)라고 하신 말씀은, 용서가 특정 횟수에 제한되는 행위가 아니라 삶의 지속적인 태도와 습관임을 보여준다. 즉, 용서는 반복을 통해 자리 잡고,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실천되는 지속적 결단이다.
사도 바울 역시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에베소서 4:32)고 가르친다. 이는 용서가 인간적 감정의 문제를 넘어, 하나님의 은혜를 본받는 영적 행위임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성경적 용서는 단순한 화해의 제스처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삶의 방식이다.
또한 구약의 전통에서 보듯, 개인의 죄는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용서는 언제나 하나님-개인-공동체라는 다층적 구조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처럼 성경 속 용서는 죄를 덮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사랑의 긴장 속에서 상대를 새롭게 바라보며 관계를 회복하는 창조적 결단이다. 결국 용서는 개인적 평안을 넘어 공동체와 사회 전체의 화해와 질서 회복을 지향하는 성경적 핵심 가치라 할 수 있다.
용서의 신학적 해석과 인간 이해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은 죄 사함을 위해 제사 제도를 시행했다. 특히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가 속죄 제사를 드리는 의식은,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레위기 16장). 그러나 이는 상징적이고 제한적인 성격을 가졌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이러한 제의적 전통이 완성되었으며, 용서는 더 이상 제사 의식에 의존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은혜로 확장되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 하신 기도,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누가복음 23:34)는 신학적으로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닌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베푸는 인간적 차원의 용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 속에서 인류 전체를 향한 보편적 은혜의 선포였다. 다시 말해, 용서는 인간의 감정 조절이나 선택 차원을 넘어 구원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주도적 행위이다.
따라서 신학적 관점에서 용서는 단순히 윤리적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성과 연약함을 직면하게 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새롭게 살아갈 가능성을 열어주는 존재론적 선언이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와 죄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용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인간은 자기 존재를 새롭게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향한 태도 또한 변화된다. 결국 용서는 인간 이해의 핵심이자,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신학적 행위이다.
현대 심리 상담에서의 용서 개념
현대 심리학과 상담학은 오랫동안 분노, 원한, 상처가 인간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왔다. 이러한 연구들 속에서 용서의 개념은 심리적 회복과 깊은 관련을 가진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았다. 상담학자 에버렛 워싱턴(Everett Worthington)은 ‘용서 치료(forgiveness therapy)’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내담자가 억눌린 분노를 해소하고 상처를 정리할 때 비로소 심리적 안정과 삶의 만족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용서는 단순히 가해자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피해자가 자기 내면에 갇힌 부정적 감정을 정리하고, 삶의 주도권을 다시 되찾는 적극적 행위이다. 특히 트라우마 경험이나 깊은 상처를 가진 내담자의 경우, 용서는 새로운 자존감 형성과 정체성 회복에 필수적이다. 상처를 붙들고 있을 때 사람은 과거에 갇히지만, 용서를 통해 미래를 향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이 점에서 심리학적 용서는 성경이 강조하는 내용과 흥미롭게도 일맥상통한다. 성경의 용서가 단순히 잘못을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라, 분노와 증오를 내려놓음으로써 참된 자유를 얻는 것처럼, 상담학에서도 용서는 억눌린 감정을 해방하고 관계를 새롭게 하는 치료적 방법론이다. 결국 심리 상담에서의 용서는 종교적 언어를 넘어, 인간의 전인적 회복을 위한 실제적 도구로 기능한다.

성경적 용서와 상담학의 접점
성경과 상담학은 서로 다른 언어와 틀을 가지고 있지만, 용서를 다루는 방식에서 중요한 접점을 형성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44)는 교훈은 단순히 도덕적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사고와 감정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요청이며, 상담학에서 말하는 '인지적 재구성(cognitive restructuring)'과도 유사하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전환이 있을 때, 심리적 치유는 가능해진다.
또한 성경적 용서는 언제나 집단적 차원에서 실천된다.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잘못을 고백하고 중보하며, 함께 용서를 경험하는 과정은 개인이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한다. 이는 상담학에서 강조하는 '사회적 지지망(social support network)'과 동일한 원리다. 사회적 지지는 개인의 회복을 촉진하며, 용서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따라서 성경적 용서와 상담학적 용서는 단순히 나란히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두 영역은 서로를 보완하며, 개인의 심리적 치유와 사회적 화해를 동시에 이루는 상호적 구조를 형성한다.
오늘날의 의미와 적용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갈등과 분열 속에서 살아간다. 가정 내 갈등, 직장 내 경쟁, 세대 간의 불화, 국가와 민족 간의 갈등은 인간 사회를 끊임없이 긴장과 상처 속에 두고 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성경적 용서는 단순히 과거를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창조적 힘으로 다시금 주목받는다.
용서는 개인에게는 내면의 자유와 삶의 안정감을 주며, 공동체에는 화해와 협력을 가능하게 한다. 더 나아가 사회 전체가 갈등을 넘어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심리 상담의 영역에서도 용서는 내담자에게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삶을 재구성하도록 돕는다. 자기 삶의 주체로 다시 서게 하고,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도록 안내한다.
결국 성경적 용서와 상담학적 용서는 대립되는 두 체계가 아니라, 서로 보완하면서 더 깊은 치유와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 신앙인은 성경을 통해 영적 차원에서, 상담 전문가는 심리적 차원에서 용서를 다루지만, 양자는 공통적으로 인간의 전인적 회복을 목표로 삼는다. 오늘날 이 두 시각을 통합적으로 활용할 때, 개인의 삶과 사회 전반은 더 큰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성경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빛의 상징, 구약과 신약의 비교 해석 (0) | 2025.09.24 |
|---|---|
| 씨 뿌리는 비유 중심 (0) | 2025.09.23 |
| 요셉의 애굽 생활과 오늘날 이민자의 정체성 ―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찾는 삶의 의미 (1) | 2025.09.23 |
| 십계명의 의미 - 사회 윤리와 신앙적 적용 (2) | 2025.09.23 |
| 다윗 시대의 악기와 음악 문화 (0) | 2025.09.23 |
| 욥기 친구들의 위로 실패 사례와 교훈 (0) | 2025.09.23 |
| 요한계시록의 상징적 수(666·144,000)의 의미 정리 (0) | 2025.09.23 |
| 드보라의 리더십 - 성경 속 여성 지도자의 의미 (0) | 2025.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