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번역과 문화의 만남이 던지는 질문
성경은 단순한 종교 문헌을 넘어, 인류 역사와 문화,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텍스트이다. 그러나 성경은 원어로 기록되었을 당시의 언어와 문화적 배경 속에서 작성되었기 때문에, 현대 독자가 이해하는 의미와 상당한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로 기록된 성경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단순한 언어 변환이 아니라 문화적 만남과 재해석의 장이 되었다.
예를 들어 구약 성경의 헬라어 번역인 **칠십인 역(Septuagint)**은 원전의 의미를 단순히 옮기는 것을 넘어, 헬레니즘 문화권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관과 상징으로 재구성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우주적 하나님’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고, 이는 번역자가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문화적 중재자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번역본을 통해 성경을 접하지만, 그 뒤에는 수천 년간 이어진 문화적 해석과 재해석의 역사가 존재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요한복음 1:1)라는 구절은 원어에서는 존재론적 선언이지만, 번역을 통해 언어와 의미, 문화적 이해라는 다층적 의미를 갖게 된다. 본 글에서는 성경 번역이 문화와 만나면서 발생하는 의미의 간극과 해석의 풍요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번역 속 언어적 차이 ― 표현과 의미의 전환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특정 세계관과 사고방식을 담는 그릇이다. 따라서 성경 번역 과정에서 원어가 가진 의미는 다른 문화권에서 다르게 해석되거나 축소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단어 ‘샬롬(Shalom)’은 단순히 ‘평화’로 번역되지만, 원래는 ‘완전함, 온전한 관계, 조화’를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를 갖는다. 현대 영어 성경에서 이를 “Peace”로 번역하면 정서적 위안 정도로 이해될 수 있지만, 원문의 깊이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
헬라어 ‘아가페(agape)’와 ‘필리아(philia)’ 같은 사랑의 개념도 번역에서 혼동되기 쉽다. 한국어로는 모두 ‘사랑’으로 옮겨지지만, 원문에서는 맥락과 관계 유형에 따라 차이가 명확하다. “나팔 소리도 분명하지 아니하면 누가 전쟁을 준비하리요?”(고린도전서 14:8–9)라는 구절은 단순한 나팔 소리의 명확성을 넘어, 언어와 의사소통의 명확성이 공동체와 삶에 미치는 중요성을 내포한다.
고대 히브리어의 시적 구조인 병행법과 헬라어의 문법적 특수성 또한 현대 언어에서 그대로 재현하기 어렵다. 번역자는 문자적 직역과 의역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야 하며, 이 과정에서 의미의 폭과 깊이가 새롭게 형성된다.
또한 번역 과정에서 생기는 미묘한 의미 차이는 독자의 신앙과 이해에 큰 영향을 준다. 예컨대 ‘의인(義人)’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에서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일부 현대 번역에서는 단순히 ‘선한 사람’으로 줄여 해석되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단어 하나가 문화와 시대에 따라 해석 폭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화적 배경이 만드는 해석의 차이
성경은 특정 문화 속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그 배경을 이해하지 않으면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알기 어렵다. 예를 들어 구약의 정결 음식 규례(레위기 11장)는 고대 근동 사회에서 건강과 신앙의 규율을 결합한 것이지만, 현대 서구나 동아시아 문화권 독자에게는 단순한 식사 제한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목자”라는 직업은 고대 사회에서는 신뢰와 보호를 상징했지만, 현대 도시 사회에서는 추상적 상징으로만 남는다. 예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한복음 10:11)라고 하신 말씀은 당시 청중에게는 직관적이었으나, 현대 독자에게는 맥락 설명이 필요하다.
문화적 차이는 번역 과정에서 의역과 주석의 필요성을 만들어낸다. 번역자가 단순히 단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의미를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재해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사마리아인은 당시 유대인에게 부정적 집단을 의미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독자에게는 단순히 친절한 인물로만 이해된다.
또한 동아시아 번역에서는 ‘하나님’을 한자 문화권에서 ‘上帝(상제)’ 또는 ‘天主(천주)’로 옮기는 과정에서 논쟁이 있었다. 이는 단순한 단어 선택을 넘어, 기독교 신개념을 해당 문화의 신격과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대한 문제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번역이 단순한 언어 문제를 넘어 문화적 조율과 해석의 책임을 수반함을 보여준다.
번역자와 독자의 시각 ― 해석의 길 위에서
번역자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해석자의 위치를 가진다. 번역자의 신학적 배경, 언어 감각, 문화 경험은 번역 결과에 큰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루터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할 때 그는 문법적 정확성보다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우선시했다. 반면, 킹 제임스 성경(KJV, 1611) 번역에서는 교리적 정확성과 권위 유지가 우선이었다. 한국어 초기 번역본에서도 ‘하나님’과 ‘여호와’라는 표현 선택은 논쟁의 중심이었다.
독자 역시 자신이 속한 문화와 언어 속에서 성경을 읽는다. 따라서 동일한 번역본이라도 이해 방식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디모데후서 3:16)라는 말씀은 번역의 권위와 효용을 강조하지만, 실제 독자가 이해하는 방식은 번역자와 독자의 문화적 배경이 함께 결정한다.
현대 번역학은 이러한 과정을 문화 간 협상(cultural negotiation)으로 정의한다. 번역은 원문과 독자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작업이자, 문화적 이해를 돕는 교육적 행위이다. 번역 과정에서 생기는 간극은 오류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와 풍요로운 해석의 가능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성경 번역과 문화의 만남, 오늘의 교훈
오늘날 세계는 다문화 사회이며,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공존한다. 성경 번역의 역사는 우리가 어떻게 타자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준다. 번역은 언제나 완벽할 수 없고, 문화적 간극을 완전히 메울 수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고, 새로운 의미가 생성된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로마서 1:16)라는 말씀처럼, 성경은 특정 민족과 언어를 넘어 보편적 메시지를 전한다. 번역이라는 다리를 통해 성경은 오늘날 다양한 문화권 독자에게 도달하며, 그 과정에서 교훈적 가치와 문화적 통찰을 제공한다.
성경 번역은 단순한 신앙적 과제를 넘어, 문화 간 이해와 소통의 본보기가 된다. 우리는 번역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형성되는 다층적 의미와 보편적 메시지를 경험할 수 있다. 문화적 맥락과 시대적 해석을 이해하며 읽을 때, 성경은 여전히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지혜와 가르침을 제공한다. 이러한 과정은 바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지는 해석의 길 위에서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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