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학

전도서의 허무 사상과 오늘의 인간: 허무 속에서 길어 올리는 지혜

by star-road 2025. 9. 29.

전도서가 던지는 급진적 질문

성경 속 지혜문학은 삶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가득하다. 잠언이 삶의 규범과 지혜로운 선택을 강조한다면, 욥기는 고난과 신앙의 신비를 깊이 탐구한다. 그 사이에서 전도서는 마치 고대의 철학자가 던지는 도발적인 질문처럼 다가온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2). 이 선언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해부하는 시작점이다. 인간이 쌓아 올린 노력, 지혜, 쾌락, 권력은 끝내 사라지고 만다는 현실을 직면하라는 초대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질문이 고대의 신학적 논의에만 머물지 않고 오늘날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현대인의 고민과도 겹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경쟁과 성취의 무대 위에서 “나는 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물음은 곧 전도서의 목소리와 공명한다.

전도서의 허무 사상과 오늘의 인간: 허무 속에서 길어 올리는 지혜

복과 순환 ― 고대와 현대가 공유하는 피로

전도자가 “해 아래 새것이 없다”(전 1:9)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한 비관이 아니라 역사와 인간의 반복성을 직시한 진단이다. 고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전쟁을 치르며 세대가 흘러갔지만, 본질적으로 삶의 패턴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는 첨단 기술과 인공지능, 글로벌 경제 체제 속에 살지만, 본질적 피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업무, 새로운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SNS 속 비교 문화가 오히려 더 깊은 공허를 남긴다. 최근 사회학 연구에서도 ‘번아웃 증후군’은 단순한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규정된다. 이는 전도자가 묘사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전 1:14)는 표현과 기묘하게 닮아 있다. 또한 현대의 ‘N잡러’ 문화는 생존과 자기실현을 위해 여러 직업을 전전하지만 만족을 얻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결국 전도서의 통찰은 시대를 넘어 현대 사회의 불안을 정확히 비추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쾌락과 성취의 덧없음 ― 소비 사회의 허상

전도자는 인생의 다양한 가능성을 직접 실험하듯 탐구했다. 부와 쾌락, 권력, 지혜, 심지어 경건한 종교적 삶조차도 완전한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 눈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금하지 아니하며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막지 아니하였으나… 모두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전 2:10–11). 이는 모든 가치가 무의미하다는 극단적 허무주의라기보다,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궁극적 만족을 채울 수 없음을 드러내는 메시지다.

 

오늘날 소비사회 역시 같은 문제를 보여준다. 새로 나온 스마트폰을 사고, 더 큰 집으로 이사하며, 직장에서 승진을 이루고, SNS에서 ‘좋아요’를 받는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고, 곧 더 큰 욕망으로 이어진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 부른다. 아무리 많은 성취와 즐거움을 경험해도 인간은 곧 그것에 적응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게 된다. 전도서의 탄식은 고대적 푸념이 아니라 오늘날 소비 문화의 심리를 정밀하게 꿰뚫는 통찰이다.

허무와 철학 ― 인간 사유의 공명

전도서의 허무 사상은 종교적 울타리를 넘어 철학적 탐구와도 맞닿는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기존 가치 체계가 붕괴한 시대를 ‘허무주의’라 불렀고, 알베르 카뮈는 인간 존재를 ‘부조리(absurd)’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시지프스 신화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전도서는 니체나 카뮈처럼 허무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전도자의 결론은 명확하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전 12:13). 이는 단순한 종교적 권고가 아니라, 허무를 넘어서는 삶의 원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또한 심리학적 관점에서도 전도서의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준다. 빅터 프랭클은 나치 수용소에서의 극한 경험 속에서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힘은 바로 ‘의미 찾기’에 있음을 증언했다. 이는 전도서가 말하는 삶의 궁극적 의미와 맞닿는다. 허무를 직면하면서도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인간 정신을 회복하게 하는 핵심 과정임을 보여준다.

일상의 허무와 새로움 ― 현대 사례의 조명

오늘날 우리는 은퇴 후의 공허, 경쟁 사회에서의 번아웃, 가족 해체와 같은 문제 속에서 전도서의 메시지를 더욱 절실히 경험한다. 한 직장인은 30년 동안 회사에 헌신했지만 은퇴 후 자신을 “무용지물”이라 느끼며 깊은 허무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그는 지역 사회 봉사 활동을 시작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 이는 전도서의 말,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전 2:24)를 현대적으로 실천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일상 속 작은 즐거움,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따뜻함, 공동체적 나눔은 화려한 성취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는 만족을 준다. 전도서는 허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의미로 전환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친다.

허무를 직면하는 지혜 ― 인간다운 삶의 회복

전도서가 말하는 허무는 절망을 선포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허무를 정직하게 직시할 때 삶의 진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성공과 부를 추구하는 삶은 결국 바람을 잡는 것과 같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이 진정으로 붙잡아야 할 것을 배운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 3:1)라는 구절은 인간이 유한성을 인정하며 살아가야 함을 알려준다. 그때 우리는 관계와 사랑, 신앙과 의미를 더 깊이 발견한다.

 

오늘날 심리학에서도 ‘수용과 전념(acceptance and commitment)’이라는 개념이 강조된다. 허무와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오히려 삶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전도서의 메시지는 바로 이러한 심리적 통찰과도 맞닿아 있다. 허무를 피하려 하기보다 정직하게 마주할 때, 삶은 새로운 자유를 얻는다.

허무를 넘어서는 지혜의 언어

전도서의 허무 사상은 단순한 탄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더 깊은 의미와 지혜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초대이다. 허무를 부정하거나 억누르기보다, 그것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오히려 더 자유롭다. 전도자는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를 제시하며, 이는 신앙적 차원을 넘어 인간이 어떻게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메시지를 통해 화려한 성공보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끊임없는 경쟁보다 균형과 만족을 더 귀하게 여길 수 있다.

 

결국 전도서의 언어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다. 그것은 삶을 무겁게 만드는 진리이자, 동시에 삶을 가볍게 해주는 자유의 언어다. 허무를 넘어서는 길은 특별한 비밀이 아니라, 허무 속에서 발견하는 의미 그 자체임을 전도서는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